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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45.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 등록일 : 2025년 12월 3일
  • 조회수 : 134

★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3:6) 

 

★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삿6:13)

 

 

하나님께서 수시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활에 간섭하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그들과 함께 하심을 그들의 눈으로 보게 하셨고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신들보다 위에 있음을 알게 하셨지만, 자기들의 생각에 치우쳐 우상을 만들고 거기에 경배하였다. 

 

그들은 왜 자기들의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먹었음에도 자기들의 삶으로 보고 느낀 사실을 부인하고 우상에 빠졌을까? 

그렇다고 그들이 안 믿은 것도 아니다. 답은 “욕구” 하나밖에 없다. 

욕구를 앞세우는 바람에 결국은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다. 사랑을 소멸시키고 은혜를 소멸시킨 것이다. 

 

다른 예로, 사람들은 왜 철학관을 찾아갈까? 요행을 바라기 때문이다. 

사탄은 항상 이런 것들을 건수로 잡는다.

‘혹시 어떻게 안 될까? 혹시 피해서 갈 길이 없을까?’ ‘있다’고 하면 그때부터 딸려 들어간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3:6) 

요인을 가지고 있었다. 요인을 갖고 있지 않으면 사탄이 장난을 치고 싶어도 못 친다. 

예수님께서 사십일을 금식하신 후 사탄이 다가왔다. 

사십일을 금식하고 나면 가장 힘든 것이 배고픔이다. 그래서 사탄이 찾아온 것이다. 

 

우상이 범람하게 된 것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램의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충족시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바램이라는 요인이 있기에 그 요인을 자꾸 건드리는 것이다. 

끝내는 그 요인 때문에 끌려간다. 가서 보니 자기의 요인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기에 거기에 빠져서 생사를 거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 아니다. 우리의 몸속에, 우리의 생활 속에 우상을 담고 있다.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9:4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도 우리 자신이 이 사실을 믿지 못하고 개개인의 생각과 조건에 빠지는 바람에 결국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스스로가 소멸해 간다. 

 

(삿6:13) “우리를 택한 백성이라 선민이라 하신 말씀은 어디로 가버리고, 우리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는 어디 가시고 우리에게 이 같은 괴로움을 주시나이까” 

원망도 되고, 호소도 되고, 바램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택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나마 그 고충에서 빠져나오게 하사 사랑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하는 계기를 만드시고자 하신 것이다.

 

오늘날도 이와 똑같은 일들이 우리 주위에서 벌어진다. 

내가 어렵고 괴롭고 답답할 때 기드온과 같은 사람을 우리 앞에서 세우셔서 은혜를 베푸시고 어려움에서 빠져나오게 하사 그나마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신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일을 아랑곳하지 않고 또다시 자기 일에 치우쳐서 우상에게 끌려간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도 그 사실을 나와는 상관없이, 기드온의 상황과는 다르다고 쉽게 단정해 버리고 개개인의 삶에 치우치게 될 때 또 다음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미디안을 몰아내시기 위해 기드온을 사용하실 때 미디안의 군대는 십만이 넘었지만, 기드온의 군대는 단 300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정병 300명을 뽑아내실 때 먼저, 두려워하는 자를 다 빼셨다. 

다음은 물가로 가서 그들에게 물을 먹게 하신 후, 자기의 우선 갈급한 욕구에 치우쳐서 허겁지겁 무릎을 꿇고 물을 먹는 사람들을 제외하셨다. 

왜냐하면 언제 어느 순간에 자기의 욕구에 치우쳐서 일을 저지를 것을 아셨기에 그들을 제하신 것이다. 

하지만 ‘언제 나를 쓰실까?’하며 주위를 살핀 사람들, ‘언제 미세한 말씀을 통해서 나를 시험하실까? 나를 돌아보실까?’ 주위를 살피며 손에 물을 떠서 물을 핥은 사람들을 택하셨다. 

그것도 단 300명의 정병을 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혹시나 많은 숫자로 이겼을 때 ‘우리 힘으로 이겼다.’ 할까 봐 그 같은 조건을 통해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조건을 허락하신다. 

질병, 물질, 이성, 직업이나 시험 등의 고충을 허락하실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시험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변모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나에게 이런 일을 허락하시고, 이 사실을 통해 내게 무엇을 바라시는지 돌아볼 수 있는 사람, 즉 손에 물을 떠서 핥는 지혜로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한다. 

하게 될 때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이시고자 역사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랑을 이루어 갈 때 새 생명을 얻은 우리에게 새로운 일을 맡기신다. 

그러기에 먼저 우리의 자리를 지키고 사랑을 이루는 우리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실이 이루어질 수 있게 새 생명을 허락받는 지혜로운 우리가 되자. 

우리가 새 생명을 얻지 못할 때는 새로운 일을 맡겨봐야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한다. 

 

이제는 한 부분, 한 부분 진짜 믿는 사람이 되자. 

믿는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믿는 사람에 대열에 서자. 

믿는 사람과 믿는 흉내를 내는 것과는 천지 차이다. 

믿는 사람은 하는 행동이 다르다. 믿는 사람은 그 어떠한 것에도 두려움이 없다. 

믿는 사람 앞에는 그 어떠한 것도 가로막지 못한다. 

진정 믿는 사람의 모습을 갖추고, 믿는 사람의 생활로서 대처해가는 지혜로운 우리가 되자. 

이 같은 삶을 살 때 주위의 모든 것이 우리를 향해 돌아설 것이다. 

 

(2000.10.08.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