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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42.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등록일 : 2025년 11월 21일
  • 조회수 : 125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에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그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3~16)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일생을 아름답게 수놓기를 바라고, 자기의 일생이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세상이 돌아가는 섭리를 돌아볼 수 있는 눈이 먼저 띄어야 한다.

 

예를 들면, 여기에 두 개의 컵이 있다. 하나는 손잡이가 있고 다른 하나는 손잡이가 없다. 

둘 다 ‘컵’이라고 불리지만,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쓰임이 달라진다. 

손잡이가 있는 컵은 손잡이가 있어서 뜨거운 물을 담을 수 있는 대신 손잡이로 인해 씻기가 번거롭고 보관 장소도 많이 차지한다. 

손잡이가 없는 컵은 뜨거운 물을 담기가 어려운 대신 씻는 것이 편하고 보관 장소도 적게 차지한다. 

우리는 손잡이가 있는 컵도 필요하고 손잡이가 없는 컵도 필요하다. 똑같이 공존해야 한다.

 

우리네 사람의 심성도 ‘이 사람은 마음에 들고 저 사람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렇게 쉽게 단정하기보다는, 어떤 때는 이 사람이 쓰이고 어떤 때는 저 사람이 쓰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기에 함부로 ‘이 일은 옳고 저 일을 그르다’고 단정 짓지 않아야 한다. 

 

우리 생각에는 ‘이 사람은 필요 없다. 이런 일은 필요 없다.’ 쉽게 단정 지어 버리지만, 하나님께서는 세상 어떤 것도 사람에게 필요치 않으면 생성시키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형제가 내 주위에 있는 것도 그 형제를 통해 사랑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거리가 되지 않는다면 그 형제를 우리 곁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그 자식에게 필요치 않은 물건이나 위험한 물건을 그 앞에 두지 않는다. 

더러는 위험한 물건이라도 그 자식에는 꼭 필요한 것이라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고 여러 차례 가르쳐갈 것이다.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네 사람을 사랑하시기에 주어진 모든 범사를 통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심을 인정해야 한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6)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며 우리에게 사람됨을 인식하게 하시고자 오늘도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신다. 

그러기에 비록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비록 내 기분에 맞지 않는다 해서 내팽개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서, 필요하셔서 있게 하심을 인정하는 우리가 되자. 

 

벽돌들이 머리를 맞대어 집을 지어가면서 “다른 것이 필요 없어. 우리끼리 딱 붙어있으면 돼” 하고 자기들끼리 붙어서 집을 지어갔다.

그러다가 세찬 바람이 불고 지진이 나서 멀쩡하던 벽돌들이 삐딱하게 돌아가고 끝내는 그 집이 무너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벽돌을 쌓기에 앞서 시멘트를 이겨 벽돌 사이에 발라두었다. 

며칠이 지나 시멘트가 굳으면서 이 벽돌들이 하나가 되어서 지진이 나고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는 집이 되었다. 

이같이 우리의 삶에서 내 생각에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하나로 묶어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물을 담을 때 둥근 그릇에 담으면 물이 둥근 모양을 하고, 사각 그릇에 담으면 물이 사각 모양을 한다. 

담는 곳에 따라서 모습이 바뀌지만, 그 내용물은 바뀌지 않는다. 

그릇의 모양에 따라 그 내용물의 모양이 바뀌는 것처럼 나의 심성과 형편 처지에 맞는 모습으로 이끌어 오심에 감사하는 우리가 되자. 

 

성경에는 미물 하나도 함부로 살생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불교 사상처럼 윤회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강퍅해질까 봐, 닫힐까 봐,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봐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 조건 때문에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마음을 닫고, 끝내는 사랑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일이 생길까 싶어서 말씀을 통해 교육하시는 것이다. 

 

상갓집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절하는 것을 보고 지적하는 것도 지혜롭지 못하다. 

그들을 바르게 인도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들과 이질감이 있는 우리의 모습을 함부로 드러내는 것이 지혜롭지 못하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매사, 우리의 생각대로, 우리의 소견대로 정리하기보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통해 무엇을 바라는지’ 그 일을 먼저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롭다.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모습이 그들과 비슷한 모습이라면 드러내는 것이 관계가 없지만, 그들과 이질 되는 모습이라면 할 수 있으면 우리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지혜롭다. 

진정 내 삶을 통해서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믿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알게 모르게 그들에게 전하는 것이 지혜롭다. 

 

우리의 삶을 통해 사랑이 증거될 수 있는 조건이라면 하나씩 가꾸어가자. 

믿는 사람의 행동과 차림새, 모든 생활 하나까지도 될 수 있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귀감거리가 되게 해야 한다. 

목회자들은 할 수 없지만 그 외 사람들은 믿지 않는 그들과 이질 된 모습이라면 될 수 있으면 갖추지 않는 것이 좋다. 

이질 되는 부분은 조금씩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스쳐 지나가는 예로서 하는 것이 지혜롭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기억하사 우리에게 감사와 기쁨으로 화답하실 것이다. 

 

믿는 사람들의 행각 하나하나가 모든 사람에게 좋은 귀감거리가 되고,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르구나” 이런 말이 나오게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오늘날 믿는다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오점을 남겼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받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그들이 이질감을 가지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기의 삶을 드러내야 하는데, 이질감을 가지는 행동을 그들 앞에 노출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6) 

이러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사탄이 틈탈 일을, 마음이 섭섭하게 될 일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그들 스스로가 마음 문을 열게, 그들 스스로가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것이 지혜롭다. 

오늘날 수많은 믿는 사람들이 이러한 삶을 살지 못해 끝내는 하나님의 사랑을 스스로 가로막고, 스스로가 월권행위를 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마5:16) 우리의 본모습을 드러낼 때는 우리의 생활을 통해 드러내고,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낼 때는 감사와 기쁨으로 드러낼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자. 

 

(2000.09.03.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