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회찬양선교재단 스킵네비게이션

 

아회소식

아회찬양선교재단의 다양한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매일묵상

묵상 40.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 등록일 : 2025년 11월 14일
  • 조회수 : 110

★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우리가 매번 보는 자연, 우리가 매번 보는 산과 강과 들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자연이 우리 눈에 보이기 이전의 사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섭리 가운데서 모든 자연의 아름다움을 우리 앞에 이끌어오기까지 예비하셨다. 

 

우리의 심성과 형편 처지를 따라서 자연은 그 모습을 달리한다.  

북방 민족 중 어떤 나라는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수십 배 또는 백 배가 넘을 만큼 넓다. 

우리나라는 좁은 면적에 70%가 산이고 평지가 30%밖에 되지 않는다. 

전쟁이 나면 그들은 넓은 대지라서 숨을 곳이 없다. 

강인한 전투력이 없으면 두 손 들고 항복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다. 

다시 말하면 형편과 처지를 따라 조건을 갖추어가지 않으면 자기들의 삶을 꾸려갈 수가 없다. 

우리는 산속에 들어가서 살아도 살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있다. 

우리의 여린 심성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이 같은 조건을 허락하셨다. 

 

한 가정이나 개개인의 삶을 돌아보아도 우리의 심성과 형편 처지를 따라서 모든 조건을 허락하셨다.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내 생각과 욕구에 치우쳐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에 불평불만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눈을 돌려 주위를 살펴볼 때마다, 입술을 벌려서 말할 때마다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우리를 위해 허락하신 조건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 나름대로, 자기의 고집대로 살아가면 끝내는 마음을 상하게 되고 그 상한 마음을 혼자 가누지 못해 주위 형제에게 누를 끼치기도 하고 주위에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왜 똑같은 사람을 만들지 않고 수억만 사람의 모습을 다르게 했을까? 

사랑을 보이시기 위해 우리의 모습을 다르게 하신 것이다. 

이러한 사랑을 비록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허락하신 일이기에 그 사실을 관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믿는 사람의 당연한 할 일이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해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우리 속에 간직하고, 우리의 생활을 통해서 그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믿는 사람의 당연한 자세이다.

 

이런 사실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사람됨의 근본을 바로 알지 못한 데서 벌어진다. 

사람됨의 근본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입술로 주어지는 말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주어지는 말이 되게, 우리가 하는 행동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주어지는 행동이 되게, 우리의 생활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주어지는 생활이 되게 하는 것이 믿는 사람의 당연한 할 일이다. 

우리가 떼는 입술마다, 움직이는 행동마다, 우리가 일구어내는 생활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모습을 지어나가게 만드는 것이 믿는 사람의 할 일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고이 간직해서 드러내게 될 때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는 말씀이 우리에게 부합된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다 할지라도 말씀을 이루고자 애를 쓰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가는 것이 믿는 사람의 당연한 할 일이다. 

만약 우리가 당연히 해야 될 하나님의 형상을 찾는 일에 몰두하지 않고, 그 일에 우리의 삶을 드리지 않고, 우리의 욕구와 생각을 따라서 나아간다면 끝내 우리의 삶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올바르게 드러내지 못한다 해도 하나님의 형상을 찾고자 하는 바램만이라도 간절하다면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실을 미쁘게 보시고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찾을 수 있도록 범사를 허락하실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 마음과 삶에 잘 간직해서 먼 훗날 우리의 후대들이 우리의 삶을 비춰보고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자 할 때 “과연 우리의 선대들이 이같이 삶을 살아 우리에게 좋은 길을 예비했구나.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가는 길을 우리에게 예비시켰구나” 하는 말이 후대들의 입술에서 나오게 될 때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에게는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또한 믿음의 사람이 자기의 욕구를 따라 가정을 이루어서, 자기 속으로 낳은 자식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데 전력투구하지 않을 때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땅 위에 사는 사람들 중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자기 삶에 급급해서, 자기 욕구에 급급해서, 자신을 가꾸는 일도 힘겨운데 자기 속으로 낳은 자식의 일을 그같이 신경 쓴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진정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가고자 하는 그 바램을 놓치지 않는 것이 지혜롭다. 

 

우리가 욕구를 따라서 삶을 산다면 믿는 사람 전체를 다 합쳐도 공자의 아버지 ‘숙량공’만도 못한 것이 된다. 

비록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그 조건을 얻지 못했지만, 자기의 자식이 선대에게 자랑할 수 있는 자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올바른 자식을 얻기 위해 한 나라의 재상이었던 사람이 칠십이 넘는 나이에 전국을 다니면서 올바른 자식을 얻게 할 아내를 찾아다녔다. 

자기의 삶이 곧 마칠 것을 알고 있음에도 깨달은 입장에서 “내가 이대로 간다면 조상들 앞에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다.”고 해서 조상들 앞에 내놓을 자식을 얻기 위해 그 같이 애를 썼다.

 

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욕구를 따라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았을 때 과연 그 자식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고자 하고, 닮게 하는 일에 전력투구하며 삶을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식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올라서는 데 급급했지, 그 자식이 진정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가는 일에 삶을 내놓은 부모가 몇이나 될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 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삶을 살고자 하는 일에 전력투구하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이런 사실을 미루어본다면 내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어떻게 찬송해야 할지, 어떠한 생활로서 믿는 사람의 모습을 드러내야 할지, 어떠한 모습으로 말해야 할지 알게 된다. 

이 같은 삶을 살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실을 미쁘게 보시고, 좋은 범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바르게 찾아갈 수 있게 인도하실 것이다.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9~11) 이런 사실을 마음 깊이 안착시켜 ‘우리의 삶을 통해 믿음의 삶을 꼭 보여주리라’ 하는 다짐이 주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여러 가지 사건을 일으켜서 이끌어오신다.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주시기 위해 우리의 삶을 이끄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 

(눅17:20~21) 지난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오늘날 믿는다고 자부하는 우리를 향해서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사람을 향해서 하신 말씀이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기에 예수님의 말씀이나 그의 삶, 예언의 말씀을 보지 않고 어디까지나 자기의 눈으로 보는 것으로 그쳐 버렸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사람이기에 그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고 말씀하신다. 

다시 말하면 “너희의 삶과 너희의 생활이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가기를 바란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보니, 욕구를 따라 살다 보니, 내가 바라는 대로, 내 이상대로 삶을 살다 보니 진정 바라봐야 할, 진정 찾아가야 할 하나님의 형상은 어디로 갔는지 간 곳이 없고 우리의 마음과 생활 속에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하나님의 형상이 흔적조차 없어질 때가 빈번하다. 

진정 우리의 삶과 생활에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하나님의 형상이 머물러 있다면 그 어떠한 어려움과 괴로움도 우리를 엄습하지 못한다. 

우리의 심성과 생활 속에 안착시키신 하나님의 형상을 찾고자 하는 바램이 바로만 정립되어 있다면, 어느 순간엔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심을 분명히 나타내실 것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찾아가느냐? 

자기의 삶에서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들, 자기의 삶에서 욕구를 잃어버린 사람들, 힘든 병을 통해서 자기의 모든 욕구를 접어버린 사람들, 사업의 실패나 악조건을 통해 자기의 해야 될 그 길을 접어버린 사람, 이런 사람이 찾을 곳이라고는 하나밖에 없다. 

이구동성으로 ‘다시 한번 내게 삶이 주어진다면, 다시 한번 제기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진다면 내가 올바른 삶을 살리라.’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찾으신다. 

이 같은 삶을 살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어느 순간엔가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의 바램을 이끄셔서 하나님의 기뻐하심으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신다. 

하지만 이왕이면 우리가 멀쩡할 때 찾을 수 있는 우리가 되게 마음을 열자. 

이제는 진정 감사로서 화답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갈 수 있는 범사를 우리의 삶에 이끌어 오신다. 

어떠한 조건이나 사건을 통해서든지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주시기 위해 지금도 애쓰심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가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일에 마음을 써야지,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에서 ‘내가 이 일을 어떻게 피해 갈꼬?’ 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아야 한다. 

이 같은 삶을 살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담대함과 능력을 허락하셔서 주어진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꼭 나타내실 것이다. 

 

(2000.08.20.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