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회찬양선교재단 스킵네비게이션

 

아회소식

아회찬양선교재단의 다양한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매일묵상

묵상 38.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 등록일 : 2025년 11월 7일
  • 조회수 : 134

★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1~32)



하나님께서 주시는 조건들은 우리네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과는 조금 다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에덴동산을 맡기셨지만, 사람의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월권행위를 하는 바람에 끝내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러면 이 사실이 태초에만 있는 것일까? 아니다. 지금도 우리 개개인에게 계속해서 벌어진다. 

 

지난날 아담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에덴동산을 맡기시고 주위 모든 조건을 허락하셨지만, 사람이 그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할 때 그에게 조건들이 하나씩 주어지게 되었다. 

첫째 주어진 조건이 하와이다. 하와가 주어졌을 때 그 일을 통해 감사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그 삶을 살았더라면 괜찮았는데, 주어진 일을 감사로 다독거려서 하나로 뭉쳤더라면 괜찮았는데, 자기의 삶을 향해 뿔뿔이 흩어질 때 사탄이 그 사실을 이용해서 끝내는 하와를 통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일을 만들었다. 

 

지금도 이러한 사실이 우리 개개인의 내적생활, 외적 생활에서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역을 정하심을 통해 자기가 해야 될 바를 알게 하신다. 

그 자리를 지켜야 될 사람이 지키지 못하고 그 자리에 벗어나는 것이다.

 

사람이 병을 얻었으면, 병이라는 어려움을 통해서 구역을 정하셨다. 

병을 얻은 사람이 어떤 조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입히심은 그 병을 낫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병을 낫게 하신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에 그의 삶을 내놓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일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내 병이 낫는 것, 내게 조건이 주어지는 것에만 치우치는 바람에 자기에게 주어진 구역을 지키지 못하게 되고 결국은 내쫓김을 받게 된다. 

 

우리의 모든 매사, 조건마다 학생이면 학교에서 공부하는 일, 직장인이면 직장을 통해서, 가정이면 가정을 통해서, 부부간을 통해서 모든 매사에 우리에게 조건이 주어지고, 이 조건을 통해서 구역이 주어진다. 

작은 구역이지만 이 구역을 통해서 삶을 살아갈 때 구역이 확장되고, 구역이 확장됨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올바르게 안착되어간다. 

하지만 우리가 이 구역을 올바르게 지키지 못할 때는 이 작은 한 구역 때문에 결국은 그의 삶이 종지부를 찍을 때가 있다. 

암은 한순간에 온 것이 아니다. 암이라는 조건이 발생하기 전에 먼저 암을 만들어내는 조건, 구역이 있다. 

그 구역을 내가 지키지 못할 때, 그 구역을 내가 다스리지 못할 때 이 사실이 그 자리를 벗어나서 암이라는 병을 만들어내게 된다. 

신기하게도 병원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이 하는 말이 큰 병을 앓는 사람치고 성질이 좋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서 올바르게 사람의 구역에 들어서려면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우리에게 구역을 정하신 그 조건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한다. 

창세기 11:1~9절 말씀을 보면 언어가 하나였던 그들이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11:4) 하고 우리도 한번 해보자 해서 바벨탑을 쌓아간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구역을 주심은, 그들에게 능력을 주심은 그 능력을 통해 자기들이 해야 할 바를 알게 하시고자 능력을 줬는데 그 사실을 감사치 못하고 바라봐야 될 곳을 바라보지 못하고 그 사실을 자기에게 머물게 하고 안착시킬 때 하나님께서 그 일을 깨뜨리신 것이다. 

 

바벨탑을 통해 자기들의 이상을 키워나가려고 쌓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 사실을 흩어서 다시금 여러 조각의 구역으로 만드셨다. 

진작 우리가 삶을 바로 살지 못해 손으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고, 수많은 갈래로 갈라지게 해서 끝내는 그 일 때문에 자기의 삶을 종지부 찍게 된다. 

하지만 이왕 흩어진 자리더라도 내가 잃은 자리에서나마, 끝자리에서나마 자기의 삶에 감사를 되찾고자, 자기의 해야 될 바를 되찾고자 안간힘을 쓸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지 누가 알겠나? 

 

그래서 병원에서 다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마취하지 않는다. 먼저 생에 애착을 갖게 한다. 

오히려 아픈 부분을 더 자극해서 살고자 하는 애착심을 스스로 일구게 만든다. 

그 사실을 통해서 ‘내가 꼭 살아야겠다. 내가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만들어서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간다.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내게 주어진 어려움과 괴로움이 나를 망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나마 죽어가는 나에게 새롭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조건을 허락하심에 감사할 수 있는 우리가 되자. 

구역을 정하신 하나님께서는 내 삶에 안착해서 그 자리에서 주저앉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감사로 화답해서 내가 잃어버렸던, 흩어졌던 조건을 한데 모아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신유 은사를 받거나 능력을 받은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신유 은사나 능력으로 사랑을 베푸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사랑을 입은 사람이 영적인 기본적인 사실을 먼저 갖추게 한 후에야 그 사실이 전해져야 아름답다. 

감당하지 못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면 끝내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하고 감사치 못해 오히려 그 은혜가 덫이 되어 그 삶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면, 은사와 능력을 베푼 사람이 그 일에 덫이 되고 오히려 그 일이 본인에게 돌아감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기에 은사와 능력을 베푸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은사나 능력을 베푸는 그의 삶을 통해 받는 사람이 그 사실을 받을 만한 능력이 되게, 자질이 되게 조건을 먼저 만들어 주는 것이 지혜롭다. 

올바른 지각을 가진 부모라면 아이에게 함부로 불을 맡기고 칼을 맡기지 않는다. 함부로 위험한 곳에 오르게 하지 않는다. 

 

먼저 아이가 칼을 다룰 수 있게, 불을 다룰 수 있게, 위험한 곳에서 자기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지혜롭다. 

지혜로운 부모라면 사랑하는 자녀가 먼저 그 사실을 감당할 수 있는 아이가 되게 한 후에야 모든 조건을 허락한다. 

그러기에 내가 은사를 받고 능력을 받았다고 해서 함부로 그 사실을 배포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먼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한 후에 그 사실을 통해 자기의 삶을 찾아가게 하는 것이 지혜롭다. 

이러한 사실을 꼭 마음에 새겨서 일생을 사는 동안 구역을 정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로, 기쁨으로 화답하는 지혜로운 우리가 되자. 

 

구역을 정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구역을 통해서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바라보지 못하고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때, 은혜를 기억하지 못할 때 거기서 내쫓김을 받게 된다. 

사람에게 주어진 구역을 세밀히 돌아보는 것, 감사로 꾸려가는 것, 그 구역을 통해 우리가 해야 될 바를 바로 바라보는 것이 사람의 할 일이다. 

하나님께서 사랑 가운데서 세상 조건을 허락하심은 그 세상 조건을 통해서 바라봐야 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인데, 그렇지 못하고 세상에 머물게 될 때 그 세상을 통해서 스스로가 자멸하는 길을 초래한다.

 

남자에게 여자를, 여자에게 남자를 허락하셔서 사랑을 이루게 하심은 그 사랑을 통해서 그 사랑을 있게 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것인데, 그렇지 못하고 그 사랑에 머물러서 바라봐야 될 일을 바라보지 못하고 서로에게 머물렀을 때는 끝내 파탄을 일으키게 된다. 

마음에 상함과 갈등을 일으키고, 어려움을 만든다. 끝내 깨닫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할 때 서로가 갈라서게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문명의 이기인 술이라는 조건이 있다. 

술은 우리의 마음을 잠시나마 쉬게 하는 조건이다. 

고심하는 사람이 술을 통해 그 마음을 잠시나마 풀 수 있다. 

술을 통해 잠시나마 우리의 모든 시름을 토로하게 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일을, 그 구역을 어려울 때 잠시 한순간 사용하는 그런 구역으로 만들었더라면 괜찮은데, 그렇지 않고 그 사실을 계속해서 우리 육체에 붓게 될 때는 끝내 없는 병을 만들어낸다. 

끝내는 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그의 삶이 종지부를 찍게 된다. 

 

술뿐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조건, 모든 것이 삶에 누적된다. 운동도 똑같다. 

‘운동을 해서 내몸이 건강해져서 이 건강을 통해서 더 오래 살아보겠다.’ 하게 되면 결국은 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자기의 삶을 좀 더 영위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삶에 종지부를 찍기도 한다. 

사람이 해야 될 바를 하지 못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구역을 지키지 못하고 벗어난 행동을 할 때 삶의 종지부를 찍게 된다. 

 

믿는 사람이 되려면 그 삶을 따라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요8:31~32) 이 말씀과 같이 그 안에 거해야 한다. 

‘믿는다’ 하고 그 안에 거하지 못하고, ‘믿는다’ 하고 그 삶을 따라 붙이지 못하고 내 방식대로 살게 될 때는 믿는 사람으로서의 구역을 스스로가 파괴해서 끝내는 믿지 못하는 길로 사탄이 가게 만든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말씀을 바로 알고 우리 생활에 바로 담게 될 때 그 말씀이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감사와 기쁨으로 이루어 가게 하신다. 

진리가 우리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우리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더 지혜롭게 만듬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한다, 말씀을 따른다, 진리의 말씀을 상고한다’ 하면서도 말씀이 우리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을 제어하는 것처럼 스스로가 그 일에 부담을 느껴 끝내는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다가 끝내 그 구역을 스스로가 깨뜨리고 만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허락하시고, 구역을 허락하심은 이 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이루기 위해서 일으키신 일이기에 그 일에 감사함과 기쁨으로 대처하면 모든 일이 아름답게 마무리된다. 

 

함부로 내 생각대로 ‘이렇지 않겠나, 저렇지 않겠나’ 하지 말고 ‘내가 어떻게 하면 감사와 기쁨으로 대처할꼬.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조건을 어떻게 하면 바르게 대처할꼬’ 하는 사실에 유념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하게 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꼭 좋은 것을 더하신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4:4~5)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셔서 은혜를 베푸시길 원하신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셔서 사랑하는 자의 얼굴을 보기를 원하시고, 사랑하는 자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심을 꼭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이루어드리는 산 증인이 되자.

 

※ 새로운 사람이 오면 그분에게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하고 어떠한 말을 해서 그에게 어떠한 구역을 만들어줘야겠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한 사실을 태무심하고 우리 스스로 폐쇄하게 될 때는 그 책임이 우리에게 돌아온다. 

파수꾼이 파수꾼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적군이 쳐들어와도 그 일을 돌아보지 못하고 태무심하면 그 책임은 파수꾼에게 묻는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2000.07.30.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