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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35.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 말라

  • 등록일 : 2025년 10월 29일
  • 조회수 : 198

★ “이스라엘 집이여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열방인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 말라. 열방의 규례는 헛된 것이라 그 위하는 것은 삼림에서 벤 나무요 공장의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요동치 않게 하나니, 그것이 갈린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에게 메임을 입느니라 그것이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하셨느니라” (렘10:1~5)

 

 

우리가 모를 때는 만물의 움직임에 유념하지 않는다. 

창조주의 섭리를 모를 때는 풍화작용으로 큰 바위가 깨져 작은 돌멩이로 변하게 될 때 ‘풍화작용으로 바위가 깨져 돌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이렇게 생각해 버리기에 자신의 생사까지도 가볍게 여긴다. 

문제는 막상 자기의 생사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는 갈피를 잡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허락하신 만물 중에서 식물이 꽃을 피우는 이유는 뭘까?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들이 꽃을 피울 때 ‘찬양한다’고 말한다.

‘풍화작용에 의해 돌이 깨지는 것은 당연하지, 꽃나무가 때가 되어서 꽃이 피는 것은 당연하지.’ 

이렇게 말해버리면 우리에게 감사가 되지 못하고 우리의 갈 길을 찾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죽음에 임박했을 때 가장 두려움을 많이 느낄까? 

헛말하는 사람, 창조주의 섭리를 무시하는 사람이 죽음에 임박했을 때 가장 두려워한다.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 내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지 자신의 삶을 점검해 보는 것이 지혜롭다. 

조금이라도 올바른 신앙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만일 내일 당장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신다면’ 이런 개념하에서 자기의 삶을 매일매일 구축해 나가는 것이 지혜롭다. 

 

성경은 “오늘 일은 오늘로써 족하다. 오늘 걱정은 오늘로써 족하다.”고 한다. 

진정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오늘 살아드리는 것이 할 일이다. 

자기의 계획대로, 자기의 만족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로 우리의 하루를 채우는 것이 지혜롭다.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갈 때 어떠한 조건이 우리 앞에 주어져도, 어떠한 일이 우리 앞에 도래해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에, 내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시기 위해 나에게 범사를 일으키시기에 내가 두려워할 일은 조금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세상을 맡기실까? 어떤 사람에게 구역을 맡기실까? 

관용하고 포용하는 사람에게 맡기신다.

그 속에 있는 모든 일을 관용하고 포용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능력과 지혜를 더하신다. 

 

우리가 관용하지 못할 때는 스스로가 그 일을 가늠하고자 하는 지혜를 구사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우리가 물건을 어느 곳으로 옮겼으면 하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내가 그곳까지 이 짐을 옮겨야겠다’는 개념하에서 시작하게 되면 그 일을 대처하기 위해 준비한다.

하지만 ‘그 일이 어려운데 하겠나?’ 이렇게 생각하면 대처할 수 있는 조건과 지혜를 구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구역을 정하셔서 각자에게 맡기실 때 그 구역을 관용하고 포용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에게만 그 일을 맡긴다. 

그 일을 삐딱하게 보면 그 일은 절대 그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그 일을 갖고 싶거든 먼저 그곳을 관용하고 포용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시기 위해, 우리의 입술과 생활에 감사를 더하시기 위해 분명 그 자리를 맡기실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 ‘이 아이는 내 자식이다. 이 아이를 키워야겠다’라는 개념하에서 시작하기에 아이가 똥을 싸든지 투정을 부리든지 잠을 못 자게 하든지 아이를 키워낸다.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먼저 감사하고 포용하고, 그 일을 내게 맡겨진 일로 보고 그 일을 감당하고자, 포용하고자, 관용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와 능력을 허락하신다. 

 

그 일을 제쳐두고 내 일을 우선으로 떠올려버리면 결국은 그 일을 포용하지도, 관용하지도 못하고 모든 일이 다 해체되어 버린다. 

우리가 “엄마 밥 줘요” 하면 밥만 오는 것이 아니라 반찬도 오고, 숟가락과 젓가락 등 밥을 먹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이 다 온다. 

“엄마 나, 밥 먹기 싫어” 하면 밥만 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조건이 다 가버린다. 

 

모든 매사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세밀히 살피심을 알아야 한다. 

과연 내가 사람의 자질을 갖추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할 일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알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뜻을 안다면 우리의 바램과 조건만 제시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그 조건도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롭다. 

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베푸신다. 우선 내 눈앞의 작은 이익에만 치우치지 말고 좀 더 포용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렘10:1~5) 오늘날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다.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자부하지만, 우상의 개념을 바로 알지 못할 때가 많다. 

보이는 상을 앞에 두었기에 우상이라고 단정하고, 우상의 개념을 보이는 시야에서 그쳐 버린다.

하지만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은 우상이 되지 못한다. 

그 사실이 내 마음과 내 생활을 점유하게 될 때 우상이 된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사람이 그러한 조건은 내버리고 내 자녀와 내 남편, 내 아내, 내 개인의 욕구에 치우치게 될 때 그 사실이 우상이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모든 일이 우상이 됨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우상이다. 그것을 해서는 안 된다” 하기보다 자기의 마음을 빼앗는 일, 자기의 생활을 빼앗는 일이 우상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형상은 형상일 뿐이지 우리의 마음이나 우리의 생활을 점유하지 못할 때는 우상이 되지 못한다. 

 

지혜롭게 대처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구역을 감사와 기쁨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절에 나가는 사람도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 자기의 사후에 올바른 삶이 주어지길 바라기에 나가는 것이다. 

그들이 그 길을 간다고 해서 손가락질한다면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의 사실을 통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지 못한 우리 자신을 먼저 깨닫고 그들이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믿는 사람으로서 올바른 자세이다. 

 

이런 삶을 구축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더하시고 우리에게 관용하고 포용할 수 있는 지혜까지 더하신다. 

이러한 사람에게 세상을 맡기시고, 이러한 사람에게 정하신 구역을 맡기셔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시고 우리에게는 감사와 기쁨이 되게 하신다. 

 

이같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 세상을 위해 쓰임 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시고 우리의 삶에 지혜와 능력을 더하실 것이다.

 

(2000.07.16.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