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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32.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 등록일 : 2025년 10월 15일
  • 조회수 : 225

★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약1:12~16)

 

 

한 번은 어떤 아저씨가 술을 과하게 먹은 후 자기 방인 줄 알고 전봇대에 옷을 벗어서 걸어두고는 길거리에 누워 편안하게 잠을 잤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은 그가 술에 취해 정신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에게는 그 행동이 아주 진지한 것이다. 

각자의 시각적인 차이일 뿐 실제로는 지켜보는 사람이나 그렇게 하는 사람이나 심적인 상태는 다 정상이다.

 

또 다른 예로, 곡예단에서 삐에로가 공연을 하던 중에 자기 모자를 걸려고 보니 걸 때가 없어. 

그래서 자기 손가락에 모자를 걸고 두고는 만족한 듯 웃으며 돌아서니 모자가 툭 떨어졌다.

‘어?’하고 떨어진 모자를 주워 또다시 자기 손가락에 걸고 두고는 돌아서니 다시 모자가 떨어졌다.

 삐에로는 왜 자꾸 걸어놓은 모자가 떨어지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의아해했지만, 관객들은 그 모습에 박장대소를 했다. 

 

이 두 가지 예는 우리의 심적 상태를 나타낸다. 

어차피 그곳에 걸려있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 자기의 바램이 거기에 걸렸으면 좋겠다 싶어서 걸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손가락은 고정된 곳이 아니기에 손가락을 빼면 모자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실생활에서 매번 이러한 사실을 벌인다. 

 

신앙생활을 한다면 기본이 확실히 되어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액자를 걸고 싶다면 먼저 액자를 걸 수 있게 못을 단단히 박아야 한다. 

신앙생활을 한다면 신앙생활의 푯대가 바로 설 수 있게, 푯대가 안정적인 자리에 들어갈 수 있게 최대한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기본이다. 

 

하나님을 믿으려고, 예수님을 믿으려고 교회에 간다. 교회에 가니 목사님도 계시고 예배도 드린다.

그래서 “여기에 걸어두자. 그럼, 난 간다.” 하고 가버린다. 

그럼, 이게 걸려있을까? 자기의 신앙이 걸려있을까? 

걸려있지 않다. 삐에로의 모습과 똑같다. 자기 손가락을 빼면 그 즉시 없어져 버린다. 

왜냐하면 그곳에 자기의 마음을 담은 것도 아니요, 아무것도 안 하니 결국은 자기의 손가락을 빼는 즉시 그 자리는 없어지는 것이다. 

자기 신앙의 푯대가 없는 것이다. 

 

“주일이네. 교회 가서 예배드려야지. 성가대 있고 목사님도 있고 성도들도 있네” 

여기에 내 신앙을 걸어두었다. 그리고 집에 간다. 

하지만 자기 손가락을 뺀 즉시 이 신앙은 벌써 없는 것이다. 

신앙의 푯대가 먼저 제자리에 박힐 수 있게 스스로가 지키고 보호하고 확인해야 한다. 

실컷 “주여!” 하고 기도하고, 갈 때는 그냥 가버린다. 신앙생활뿐 아니라 가정생활도 똑같다. 

 

우리가 가진 신앙관 자체가 걸릴 수 있는 자리, 걸릴 수 있는 조건과 형편 처지를 스스로가 만들어야 한다. 

최대한 자기의 신앙관이 바르게 걸리도록, 자기의 조건이 바르게 걸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가 못이 박혀있지 못하게, 자기의 신앙관이 박혀있지 못하게 만드는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한다. 

“못이 없다. 뭐가 없다.” 불평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기가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신앙관을 바로 걸 수 있도록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심지어 무덤에서 살아나게 하셨지만, 아무리 증거를 보여줘도 사탄이 방해하는 바람에 신앙이 걸리지 못하게 못을 빼버린다. 

그럼,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내 신앙관을 걸려면 어차피 내가 만들어야 한다. 

그럼,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이 신앙인가? 아니다. 

그런 증거를 보였을 때 그 증거가 내 마음에, 내 생활에 바로 걸려있도록, 그 증거를 내 속에 담을 수 있게 내가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이다. 

 

수많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한다고 아우성치지만, 이러한 기본이 되어있지 않기에 도로묵이 되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몇십 년을 해도 똑같고 직분을 받아도 똑같다. 기도해도 똑같고 헌금을 드려도 돌아서면 똑같다. 

기본적인 신앙관이 빠지지 않게 스스로가 최대한 바르게 붙들어 매는 것이 신앙인의 할 일이다. 

 

내 감사, 내 기쁨은 최대한 내가 보호해야 한다. 

감사를 빼앗길 일, 기쁨을 빼앗길 일을 스스로가 만드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만지고, 내가 느낀 일이라도 내게 감사가 되지 않으면 사탄에게 속은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의 생활에 깊이 뿌리 내려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리의 신앙관을 흔들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사실이 끊이지 않고 나가서 모든 사람에게 바로 전달될 수 있게 하는 것이 믿는 사람의 할 일이다. 

 

어려움과 괴로움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감사를 잃어버리는 것도, 기쁨을 잃어버리는 것도, 시험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고 이제는 속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최대한 우리의 신앙관이 흔들리지 않게, 최대한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내게 허락된 감사와 기쁨이 흔들리지 않게 스스로가 붙들어 매고 보호하고 지켜서 먼 훗날 우리의 후대들이 우리의 삶을 보고 “우리의 선대들이 이같이 아름다운 삶을 살았구나”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모두의 삶이 되어야 한다.

 

(2000.03.26.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