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회찬양선교재단 스킵네비게이션

 

아회소식

아회찬양선교재단의 다양한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스토리

찬양과 함께하는 삶의 이야기

할머니와 나

  • 등록일 : 2024년 6월 13일
  • 조회수 : 400

 

세월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 넷째 남동생이 태어난 후 엄마는 올망 졸망한 두 세 살 터울의 아이들을 다 보기 힘들어 둘째인 제일 순한 나를 외할머니댁으로 종종 보내셨다

제일 순하다는 것은 부모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셨기에 그렇다는 거지 그 외에 다른 진실이 있는지는 모른다.

외할머니댁의 생활은 우리 집과는 완전히 다른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구 수성구이지만 외곽에 위치하고 있어서 비포장된 도로로 먼지 폴폴 날리며 덜컹거리는 버스가 하루에 2번밖에 오지 않는 마을에 살았다.

큰 마당에는 지하수 물을 길어 올리는 펌프도 있었다.

할머니가 한 바가지로 마중물을 펌프 안에 시원하게 부으면 난 열심히 온몸을 덜썩거리며 펌프질을 한다

그러면 펌프의 동그란 구멍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는 것이 참 신기하였다.

이 물은 한번 쓴 물이라도 버리지 않고 빨래나 걸레를 씻을 때 다시 쓸 수 있도록 큰 통이 항상 펌프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침에 일어나면 손바닥 만한 손때 묻은 작은 동그란 거울을 벽에 비스듬히 세워 놓고 허리까지 오는 머리숱 

없는 긴 머리를 참빗에 한참 빗어 내린 후 휘휘 감아 은비녀로 말아 올리셨다.

성격이 깔끔하셔서 집안에 모든 것이 반들반들 빛이 났다.

 

여름날이면 마당에 나를 엎어 놓고 펌프질로 받아 놓은 오싹한 차가운 물로 등을 쓱쓱 문질러가며 등물을 해주셨고 

추운 겨울밤이면 마당에 나가 얼음 살살 얼은 큼직막하게 썰은 동치미의 무를 젓가락으로 꾹 찔러 간식으로 주셨다.

친구가 몇 없던 작은 시골에 나는 할머니만 졸졸 따라다니며 할머니가 하는 것은 다 간섭하고 다녔다

할머니가 이웃에 놀러 가면 할머니의 손을 잡고 팔랑거리며 따라 다녔다.

저녁에도 종종 할머니들끼리 모이곤 하셨는데 그 곳에 따라갔다 잠이 들어 할머니의 등에 엎혀 집에 오곤 했다.

그 날도 나는 이웃집에서 잠들었는지 할머니의 등에서 어렴풋이 눈을 떴다.

밤기운이 차가웠는지 머리 위까지 옷으로 감싸 덮어 주셨는데 허영청 밝은 달빛이 할머니의 하얀 얇은 옷을 통해 환하게 비춰 보였다.

깨끗한 밤 공기 가운데 우리 할머니의 냄새와 자그락 자그락 작은 자갈길을 밟는 할머니의 발자국 소리, 너무도 평안한 마음에 다시 잠이 들었다

 

할머니는 기도도 많이 하셨다. 늦은 나이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나를 걱정하시다가

드디어 엄마가 나의 결혼 소식을 알리니 아무것도 내 소식을 듣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사람이라도 괜찮다~ 어느 나라 사람인데?’ 라고 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내가 외국 사람을 만난다는 자도 꺼낸 적이 없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내 남편을 미국사람이라고 하셨다.

아무리 캐나다 사람이에요해도 뭐라? 그래 미국사람~ ’

 

내가 40대 중반이 되었을 때 어느 겨울, 할머니가 새벽기도를 가시다가 넘어져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머니를 만나러 병원에 들렀다.

평생 긴 머리에 비녀를 하셨는데 병원에서는 손질이 쉬운 짧은 커트머리의 할머니가 계셨다

병문안을  갈때마다 할머니는 용돈을 주셨다. 무엇이든지 주실려고 하셨다.

 

병원에 3년 정도 입원하셨는데 마지막으로 찾아뵈었을 때 할머니는 돈이 없으셨다.

정신도 조금 없으셨다.

할머니는 침대 머리 맡에 입지 않은 병원복 바지를 주시며 가져가라고 하셨다

할머니 이건 못 가져가요

이거 추울 때 내복처럼 입으면 따뜻하다 아이가, 갖고 가라 내가 줄게 없다

하신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해도 웃기셨든지 한참 배를 잡고 같이 웃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 할머니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영정사진 조차 제대로 찍지 않은 아주 조그마한 체구의 미소를 띄고 있는 할머니의 사진을 보고 슬프기보다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 할머니 지금쯤 예수님을 만나 열심히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놓고 계시겠지, 그리고 또 남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겠지

그리고 나는 카메라를 들고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찍었다

할머니의 사진이 내게 하나도 없는 걸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집 근처에서 손자를 업고 걸어가는 이웃 할머니를 보았다

곤히 잠든 아기, 거기서 내 모습을 보았다. 저 아기도 언젠가 할머니와의 추억을 되살리겠지

 

사랑..

어떻게 살아왔든지 세상 모든 사람들은 사랑을 이어 가며 산다.

그리고 사랑을 기억하고 산다

사랑을 깨달은 나이가 되었을 땐 이젠 받은 사랑을 되갚으며 산다.

우리 할머니가 그랬듯이, 우리 부모님이 그랬듯이, 우리의 목사님이 그랬듯이, 우리의 선생님들이 그랬듯이

우리도 그렇게 사랑을 잇는 어른이 된다.